동해안의 밥도둑이자 술안주…밥과 생선을 같이 발효한 향토 음식, 식해(食醢)

김제니 기자 / 2024-07-19 17:58:22
소금을 적게 사용해 짠 맛이 적고 담백해
전국에서 즐길 수 있는 식해 맛집 소개

많은 한국인들은 젓갈을 간단한 밥반찬으로 애용한다. 젓갈의 짠맛이 밥과 만나 입맛을 돋우기 때문이다. 어떤 젓갈은 밥이 들어 있기도 하다. ‘식해(食醢)‘는 가자미, 명태 등의 생선을 좁쌀밥과 같이 단시간에 발효시키는 음식이다. 

식해는 젓갈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달리 소금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짜지 않고 담백하다. 식해의 주재료인 가자미와 명태는 비린내가 적은, 겨울이 제철인 생선이기도 하다. 식해는 보통 겨울에서 봄에 담가 먹는다.

가자미로 담근 가자미식해 / 사진=위키백과

조선시대 시기에 담갔던 ‘흰 식해’

한국의 식해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조선 중기의 요리 서적인 <요록(要錄)>(1680)과 <주방문(酒方文)>(17세기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주방문>에서는 “손질한 생선을 2~3일 정도 소금에 절인 후 절인 생선을 깨끗이 씻은 다음 무거운 것으로 눌러 짠물을 뺀다. 쌀로 죽을 쑤어 식힌 다음 절인 고기와 함께 섞는다. 잘 삭힌 후 죽을 씻어낸다. 다시 밥을 지어 삭힌 생선과 산초를 넣고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라고 전한다. 당시 주재료는 생선, 소금, 쌀이었다. 고춧가루 없이 소금으로만 간을 하여 ‘흰 식해’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안 지방의 대표적인 식해; 가자미식해, 명태식해, 갈치식해

한반도에서 식해를 담가 먹는 지역은 동해안을 접한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이다. 동해안은 서해안보다 조수 간만의 차가 적어 소금이 많이 생산되지 않는다. 그 대신 곡물을 넣어 젓갈을 담근다. 서해안 지역이 소금에 절인 젓갈이 발달했다면, 동해안 지역은 좁쌀과 엿기름으로 발효한 식해가 발달했다. 엿기름은 생선의 뼈를 무르게 해서 식해를 뼈채 먹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식해를 담그는 해산물로는 명태, 가자미, 오징어, 도루묵 등이 있다. 그중 강원도 삼척의 ‘가자미식해’, 강원도 강릉의 ‘명태식해’, 경상남도 창원의 ‘갈치식해’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가자미식해는 함경도와 강원도의 동해안 지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가자미는 넓적한 모양과 나란한 눈의 위치 때문에 ‘접어(鰈魚)’ 또는 ‘비목어(比目魚)’라고 불렸다. 해산물이 풍부하게 잡히는 지역인 강원도 삼척에서는 가자미를 구이와 조림, 찜, 국 등에 다양하게 이용해 왔다. 그 중 가자미식해는 삼척 지역의 사람들이 가자미찜과 함께 손님상과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반찬이다.

명태식해 역시 강원도 지역민들이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을 넣지 않고 절여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이다. 특히 강릉 지역에서 즐겨먹는다. 명태식해의 조리법은 말린 명태를 토막 내어 밥을 고루 섞은 다음, 엿기름가루와 고춧가루, 소금, 생강 등의 갖은 양념을 하여 항아리에 담근다. 이후 뼈가 삭으면 먹는다.

갈치식해는 창원을 포함한 경상남도 남해안 지방 사람들이 밥반찬으로 먹는 음식이다. 갈치는 생김새가 긴 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옛날에는 ‘도어(刀魚)’라고 불렸다. 창원 지역에서는 ‘칼치’라고도 한다. 창원에서는 주로 7~11월에 많이 잡히는 어린 갈치로 식해를 만들어 먹는다. 소금에 살짝 절인 갈치를 그늘에서 말려 양념과 조밥을 섞어 버무린다. 5~10일 정도 지난 뒤 소금에 절인 무채와 함께 다시 양념을 넣어 버무린 후 3~5일간 숙성 과정을 거쳐 먹는다.

산지에서 직접 맛보자, 전국 식해 맛집 3선

속초종합중앙시장 / 사진=속초종합중앙시장

속초관광수산시장(속초종합중앙시장)은 속초에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는 ‘필수 코스’이다. 흔히 ‘속초중앙시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만석닭강정’을 먼저 떠올리지만, 속초중앙시장은 본래 수산시장이다. 활어회와 더불어 식해, 젓갈 등 해산물 발효식품도 많이 판매한다. 특히 식해는 동해안에서 직접 잡은 가자미, 명태 등을 산지에서 손질해 신선한 품질을 자랑한다. 시장 내 평화젓갈, 승훈이네젓갈 등의 점포에서 식해를 판매한다.

소돌막국수 / 사진=소돌막국수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소돌막국수’의 메뉴판엔 ‘식해’가 없다. 소돌막국수에서 만든 명태식해는 비빔막국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막국수나 비빔냉면에 홍어, 간재미회 등을 넣는 것처럼, 소돌막국수는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명태를 고명으로 선택했다. 지갑에 여유가 있다면, 수육을 추가로 주문해 막국수, 식해, 수육의 ‘삼합’을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상북도 포항시의 ‘할매식당’은 갈치 정식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이다. 메뉴도 간단하게 ‘칼치 정식’과 ‘양념게장’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갈치식해는 이 ‘칼치 정식’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반찬이다. 이 식당의 갈치식해는 특이하게 진미채가 있는데, 식해의 수분을 잡기 위해서이다. 갈치식해는 따로 포장도 가능하다.

도심에서도 즐겨보자, 서울 식해 맛집 3선

식해는 산지에서 직접 맛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식해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식해 맛집 3곳을 소개한다. 

옥돌현옥 / 사진=옥돌현옥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옥돌현옥’은 평양냉면이 주력인 식당이다. 평양냉면과 더불어 동해안에서 당일 직송한 가자미로 직접 담근 전통 방식의 가자미식해도 만날 수 있다. 그 외 돼지곰탕, 소고기국밥 등의 다양한 메뉴 역시 즐길 수 있다.

화진포막국수 강동구청점 / 사진=화진포막국수 강동구청점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화진포막국수’에는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보쌈이 있다. 기름진 보쌈과 알싸한 명태식해를 곁들인 ‘명태식해 보쌈’이다. 또한 비빔막국수에 명태식해를 추가한 ‘명태식해 비빔막국수’는 명태식해의 매콤함과 메밀국수의 은은한 메밀 향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여기에 동치미 국물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개운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광화문국밥 / 사진=광화문국밥

마지막으로 서울 중구 정동(세종대로)에 있는 ‘광화문국밥’은 돼지국밥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이다. 보통의 돼지국밥과는 달리 맑은 국물의 국밥을 판매하는 광화문국밥은 2019년부터 6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의 ‘빕 구르망(35유로 이하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맛집)’ 리스트에 올랐다. 가자미식해는 돼지국밥, 피순대, 수육 등 육고기 메뉴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해산물 메뉴이다. 광화문국밥의 가자미식해는 담백한 맛으로, 은은한 맛의 돼지국밥과 궁합이 좋다.

식해는 밥반찬으로 주로 먹지만, 술안주로도 제격인 음식이다. 삭힌 홍어회는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면, 식해는 청주 혹은 소주와 좋은 조합을 자랑한다. (사)발효음식연구원 신미화 원장은 “식해가 곰삭으면 약간 알싸한 맛이 나기 때문에 맑은 청주나 소주와 곁들였을 때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김제니 장독대뉴스 기자 jennykim.jdd@gmail.com

[ⓒ 장독대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제니 기자

장, 김치, 술 등 한국 발효 식문화에 관한 기사 제공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