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본질을 지키며 세계의 식탁을 넘보다, 경북 영주 만포농산 ‘무량수’ - 간장협회X장독대뉴스 기획시리즈 ⑩

김민지 기자

gim663071@gmail.com | 2026-09-16 16:20:10

선친 터전 잇고 자연발효 메주·옹기숙성·수작업… '자연 발효' 3대 원칙 고수
명인의 손맛 넘어 셰프의 주방으로… 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
"타바스코·스리라차처럼… 세계인 식탁 사로잡을 한식 대표 소스 꿈꾼다"

‘무량수(無量壽)’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다함이 없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뜻처럼 장을 드시는 분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무량수의 장 사업은 1996~1997년경 선친이 귀농 후 농한기 소득을 마련하고, 당시 고추 값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던 지역 농가와 상생하기 위해 장을 담근 것이 출발점이었다. 

무량수의 장독대들

선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장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정병우 대표는 가업을 이어받은 뒤 장을 배우기 위해 전국의 장 명인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명인마다 장의 수분과 농도 등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랐고, 각자의 경험과 방식에 의존해 장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 대표는 전통적인 ‘손맛’으로는 장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장을 만드는 사람의 경험에만 의존하기보다 장의 특성과 품질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 대표는 장을 하나의 완성된 음식이 아니라 요리의 맛과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정의했다. 장을 부품으로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 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해 하나의 요리로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 대표가 그 답으로 주목한 사람들이 셰프였다. 좋은 장을 만드는데서 그치지 않고, 장의 특성과 가능성을 음식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미쉐린 스타 한식당 ‘주옥’의 신창호 셰프를 비롯해 현장에서 장을 깊이 있게 다루는 셰프들과 협업을 시작했다. 

“전통은 박제가 아니다”... 메주·옹기·자연 발효를 지키다 

무량수가 생각하는 전통 장의 핵심은 자연발효한 메주와 옹기숙성,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다. 메주에 다양한 미생물이 관여하는 전통적인 발효 방식을 바탕으로 장을 만들고, 옹기에서 숙성하며 사람이 발효 상태를 세심하게 관리한다. 

정 대표는 전통 장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관련 서적과 논문을 찾아 읽으며 장의 발효 과정과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이탈리아 등 해외 발효식품의 사례도 함께 살폈다. 

연구 과정에서는 된장의 발효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군내와 텁텁한 맛을 줄이고, 보다 선명한 풍미를 구현하는 데 주목했다. 특히 산미를 높여 된장의 텁텁한 맛을 상쇄하는 데 주목했다. 산미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풍미가 한층 선명해지고 감칠맛이 살아나는 것은 연구 과정에서 얻은 부가적인 효과였다.

정 대표는 “전통은 옛날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효와 연구가 만나 탄생한 대표 제품, ‘무량수 된장’과 ‘무량수 간장’

무량수의 대표 제품은 ‘무량수 된장’과 ‘무량수 간장’이다.

무량수 된장은 전통 방식으로 띄운 메주에 소백산 자락의 깨끗한 물과 신안 천일염을 사용해 옹기에서 자연 발효·숙성한다. 전통 된장이 가진 깊은 맛과 감칠맛은 살리되 강한 발효취와 텁텁한 뒷맛을 걷어내 한식은 물론 서구식 소스나 드레싱 베이스로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된장을 가른 후 옹기에서 숙성하는 조선간장 역시 깊은 풍미를 지닌다. 인공 조미료나 첨가물 없이 자연 발효 과정에서 응축된 아미노산을 통해 감칠맛을 낸다. 나물과 국, 탕 요리 뿐만 아니라 파인다이닝 셰프들의 소스 터치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무량수의 제품들

이처럼 치열한 연구 끝에 완성된 무량수의 장은 ‘주옥’, ‘모수’, ‘밍글스’ 등 국내 대표 미슐랭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국내 대형 항공사의 퍼스트 클래스 기내식에도 공급되며 다양한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자연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맛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서로 다른 장을 조화롭게 섞는 ‘블렌딩’ 기법 등 그간의 개발 과정은 최근 유튜브 콘텐츠 ‘전현무의 셀러-브리티’를 통해서도 소개됐다. 

[사진 = 유튜브 채널 '전현무의 셀러-브리티' 화면 캡처]

쌈장을 식빵에?… 경계를 허무는 해외 시장 개척

현재 무량수는 일본, 미국, 프랑스 등 해외 시장으로 장을 수출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식문화 다변화로 국내 장류 소비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일본의 기꼬만 간장이 해외에서 수조 원대 매출을 올리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듯 우리 장류 역시 경계를 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무량수를 찾은 미쉐린 3스타 엠마뉴엘 르노, 줄리앙 르노, 팀 보우리 등 해외 유명 셰프들

무량수가 주목하는 지점은 해외 소비자들이 펼쳐 보이는 장의 ‘새로운 쓰임’이다.

“예전에 방문한 이탈리아 손님이 쌈장을 식빵에 발라 먹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낯설었지만, 우리가 김치볶음밥에 치즈를 얹어 즐기듯 지극히 자연스러운 융합임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인이 장의 사용법을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구 소비자들이 샌드위치나 바베큐 소스로 장을 자유롭게 변형해 쓰는 시도 속에서 우리 장의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세계 시장의 문을 열기 위한 연대와 전환

한국 장류가 세계 식탁에서 더 넓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장을 보다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제품의 활용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장의 고유한 특성을 바꾸기보다는 다양한 음식에 보다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타바스코·스리라차처럼 기억되는 한식의 즐거움”

무량수가 품은 궁극적인 꿈은 타바스코나 스리라차처럼, 세계 어디서나 이름만 들어도 한국의 맛을 떠올릴 수 있는 대표 장을 만드는 것이다.

“먹는 행위가 하나의 유희이자 문화가 된 시대인 만큼, 전통의 핵심은 지키되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한국 전통식품이 가진 즐거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 대표는 전통 장을 이어갈 후배 생산자들에게도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나갔으면 한다”며 “전통의 가치를 지켜가면서도 각자의 방식을 통해 장의 가능성을 넓혀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독대 / 김민지 기자 gim663071@gmail.com


 만포농산 무량수

주요 제품: 전통 된장, 전통 쌈장, 한우 볶음 고추장, 전통 간장, 국산 참기름, 국산 들기름

주소: 경북 영주시 안정면 용주로 913, 913-15

전화번호: 080-632-7883

이메일: mrs7885@naver.com

무량수 홈페이지 : https://muryangsu.com/ 


사단법인 간장협회(회장 우춘홍)는 장류 생산자·요리사·교육자·소비자 등이 함께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비영리단체로, 한식 간장을 비롯한 전통 장류의 올바른 장 문화를 전파하는데 힘쓰고 있다.


[간장협회 X 장독대뉴스 기획시리즈]

① 대전 '다정식당' 

② 경남 고성 '콩이랑 농원'

③ 전남 보성 '메주익는마을'

④ 경기 김포 '장수이야기'

⑤ 전남 고흥 '해담은장뜰'

⑥ 전남 보성 '징광문화'

⑦ 남양주 '이삭뜰'

⑧ 충북 괴산 '솔뫼유기농업영농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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