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인정한 한국의 장(醬),이제는 이름을 바로 세울 때

김제니 기자 / 2026-03-23 16:42:28
전문가 기고
고훈국 고려전통식품 기순도전통장 대표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장의 영양 성분 몇 가지가 아니었다. 더 짜냐, 덜 짜냐의 기술논쟁도 아니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것은 장을 만들고, 보관하고, 나누고, 먹는 지식과 신념과 관행의 전체 체계, 곧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였다.

한국의 장(醬)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다. 한식의 간이고, 감칠맛이고, 문법이다. 장은 음식 위에 얹는 부수적 양념이 아니라, 한식의 구조를 세우는 중심축이었다. 좋은 장 한 숟갈은 짠맛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간과 맛을 함께 완성한다. 한식에서 장은 소금의 대체재가 아니라, 음식의 뼈대를 세우는 본체였다.

기순도전통장 장독대 ⓒ 기순도 전통장 (Facebook)

원래 한국 전통 간장은 하나가 아니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전통 간장을 그저 국간장 한 이름으로만 기억하지만, 실제 우리 장 문화는 훨씬 정교했다. 숙성 정도와 쓰임에 따라 청장, 중간장, 진장 등으로 분화되었고, 진장·겹장·씨간장 같은 덧장의 문화까지 발전했다.

맑은 빛을 살려야 하는 나물·국·탕에는 청장이, 감칠맛과 빛깔이 필요한 음식에는 중간장이, 오랜 시간 눌러 쌓인 절정의 풍미가 필요한 음식에는 진장과 겹장이 쓰였다. 좋은 장은 짠맛만 보태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간과 깊이를 함께 세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과학성이다. 우리 조상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의 축적을 통해, 장을 담그는 시기와 지역의 온도·기후에 맞춰 염도를 달리하며 발효를 조율해 왔다. 옹기 또한 단순한 저장 용기가 아니었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옹기는 숨 쉬는 미세기공과 뛰어난 온도 완충성으로 발효를 돕는 도구였다.

한국의 장은 감에 의존한 민간요법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축적된 치밀한 경험과 검증의 과학성이 빚어낸 결과였다. 바로 이 축적의 토대 위에 오늘의 과학기술을 접목해 우리 장을 더 깊이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말해야 할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이 지점에서 장의 염도를 단순한 숫자로만 재단하는 것은 한국 장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전통 한식간장의 높은 염도는 맛 설계를 못한 결과가 아니라 발효를 통제하는 핵심 조건이었다. 장은 많이 부어 짠맛을 만드는 식품이 아니라, 적은 양으로도 간과 감칠맛의 중심을 세우는 발효 조미의 핵심이었다. 문제는 장이 너무 짠 데 있지 않다. 우리가 장을 어떤 음식에, 얼마나, 어떻게 써 왔는지에 대한 감각과 교육을 잃어버린 데 있다.

그런데 이 장구한 체계는 불과 두 세대 만에 급격히 약화됐다. 개화기 이후 유입된 일본 유래 장류, 곧 쇼유와 미소의 체계가 ‘개량’과 ‘선진’의 이름으로 너무 쉽게 표준처럼 받아들여졌고, 산업화와 도시화는 집에서 장을 담그는 생활 기반 자체를 허물었다.

1960년대에는 장독대를 정리·철거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까지 확산되었고,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는 장을 담글 공간을 일상에서 밀어냈다. 할머니가 담근 장맛을 어머니가 잇지 못했고, 어머니가 모르는 것을 손주 세대가 알 수는 없었다. 수천 년의 장 문화가 생활의 중심에서 밀려난 데에는 불과 두 세대면 충분했다.

더 심각한 것은 문화의 단절이 이름의 상실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제도 속에서 우리 고유의 장은 여전히 ‘한식간장’, ‘한식된장’, ‘한식메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한식’ 이라는 말 자체는 좋은 이름이다. 그러나 문제는 본래 우리 것이 수식어를 달아야만 구별되고, 일본 유래 제조방식의 장류는 더 일반적인 이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은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이고, 기준은 결국 산업과 인식의 방향을 결정한다. 유네스코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인류무형유산으로 인정한 지금, 이제는 보호의 꼬리표를 붙이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우리 장의 본래 이름과 자리를 되찾는 방향으로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기순도전통장 장독대 ⓒ 기순도 전통장 (Facebook)

따라서 식약처의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개정과 향후 행정예고 과정에는 우리 장의 이름과 분류 체계를 바로 세우는 내용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한식메주’, ‘한식간장’, ‘한식된장’에서 ‘한식’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고유의 이름을 회복하는 일, 일본 유래 제조방식의 장류는 그 방식이 드러나도록 더 분명하게 표기하는 일, 그리고 우리 전통 장이 ‘기타장류’의 소멸 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유네스코 등재 이후 한국 사회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제도적 응답이다.

산분해 원료를 쓰는 제품 자체를 무조건 배척하자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무엇이 장(醬) 의 본류이며, 어떤 기준이 ‘간장’의 이름을 대표해야 하느냐에 있다. 발효를 거친 장이 간장의 이름을 대표하도록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산분해 원료는 조미식품으로 재분류하거나, 혼합간장이라면 발효를 거친 장이 과반을 이룰 때에만 ‘간장’이라는 이름을 쓰게 하자는 식의 정책 논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누군가를 부정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장의 이름과 기준을 바로 세우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 장의 진 경쟁력이 드러난다. 일본 요리가 별도의 육수 체계를 정교하게 발전시켜 온 문화라면, 한식은 장(醬)이 음식의 간과 맛의 중심축으로 작동해 온 문화다. 좋은 장의 힘은 모든 것을 대체하는 만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맛의 핵심 기능을 한 번에 집중시키는 데 있다.

맛있는 장 한 숟가락은 많은 국·탕·나물·무침에서 별도의 육수와 추가 간의 부담을 크게 줄여 조리를 더 쉽고 빠르게 만든다. 장 담그기에는 긴 시간이 들지만, 좋은 장은 오히려 식탁 위의 시간을 절약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장의 ‘올인원’ 경쟁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찬반의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한국의 장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경제·문화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지금, 이제는 우리의 전통장을 우리의 기준으로 다시 읽고, 우리의 과학으로 설명하며, 우리의 정책으로 키워야 한다.

학교 급식과 조리 교육, 지역 체험과 전문 인력 양성 속에서 장(醬) 교육을 한식 정체성 교육의 중심에 두어야 하고,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로 미생물·숙성·용기·향미·안전성·표준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유네스코 등재는 끝이 아니라 출발이다. 법과 제도, 교육과 연구, 산업과 시장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장의 위상 회복은 현실이 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옛것을 붙들고만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되 법도를 잃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 장의 법고는 분명하다. 콩과 소금과 시간이 빚어낸 발효 체계, 청장과 중간장과 진장으로 이어지는 숙성의 문법, 집집마다 다른 맛을 품어온 전승 구조, 그리고 자연을 읽어낸 경험과 검증의 과학성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의 설계도를 들여와 우리 장을 다시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장의 근본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의 언어와 기술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 한국 간장의 미래를 말하려면, 먼저 한국의 장(醬)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유네스코가 인정한 한국의 장에 우리가 응답하는 방식이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길이다.

글=고훈국 고려전통식품 기순도전통장 대표

편집 김제니 기자 jennykim.jd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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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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